편의점에서 라면 두 봉지를 샀다. 하나는 지난 편에서 다룬 우지라면, 하나는 팜유로 튀긴 보통 라면.
뒤집어서 나란히 놓고 읽어 봤다.
소기름은 1989년에 “혈관을 막는 기름”으로 쫓겨났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이 팜유다. 그러니 팜유 쪽이 깨끗한 성적표를 들고 있어야 맞다.
그런데 포화지방은 팜유가 우지와 맞먹는다. 둘 다 절반가량이고, 자료에 따라서는 팜유가 오히려 높게 나온다. 이 시리즈가 계속 추적해 온 리놀레산은 팜유가 우지의 약 3배다.
포화지방이 무서워서 우지를 버렸다면, 팜유는 같은 검문소를 통과하지 못했어야 한다. 그런데 무사통과했다.
비밀번호는 성분이 아니었다. 단어였다. 식물성.
이번 편은 이 단어 하나를 뒤집어 보는 글이다.
이 글이 답하는 세 가지
1. ‘식물성 기름’은 건강한 기름이라는 뜻인가?
아니다. 식물성은 원료의 출신을 말하는 분류어이지 품질 표시가 아니다.
포화지방 대표주자인 팜유와 코코넛오일도 식물성이고, 트랜스지방 덩어리였던 마가린도 식물성이었다.
2. 그런데 왜 식물성이라고 하면 건강해 보이나?
1911년부터 광고가 그렇게 가르쳤고, 라벨의 단어가 건강 평가를 끌어올린다는 것은 소비자 연구로 확인된 현상이다. 헬스 헤일로라는 이름까지 있다.
3. 그래서 뭘 보라는 건가?
앞면의 단어가 아니라 뒷면의 원재료명. 이 글 끝에서 30초짜리 연습을 한다.
라면 봉지 뒤를 읽어봤다
우지라면이 다시 나온 덕분에, 36년 만에 같은 회사의 우지 라면과 팜유 라면을 나란히 비교할 수 있게 됐다.
포화지방 함량은 표준 식품성분 자료 기준으로 두 기름 모두 절반가량이다. 우지라면 출시 뒤 나온 성분 비교 기사에서는 100g당 우지 41g, 팜유 46g으로 팜유가 오히려 높았다.
포화지방을 기준으로 심사했다면 결과는 무승부이거나 팜유의 패배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우지가 퇴출되고 팜유가 국가대표 튀김유가 됐다.
봉지에서 눈에 띄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콜레스테롤 없음”이라는 표기다. 이 문구는 잠시 뒤에 따로 뜯어 본다. 사실이지만,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식물성’은 성분명이 아니다
식물성 기름(vegetable oil)이라는 말에는 야채가 없다. 콩, 목화씨, 유채씨, 옥수수 배아, 야자 열매. 식물에서 왔다는 출신 표시일 뿐이다.
출신은 품질을 말해 주지 않는다. 같은 식물성 안에 정반대 성격의 기름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코코넛오일은 식물성인데 포화지방 비율이 기름 중 가장 높은 축이다. 오리기름은 동물성인데 불포화지방이 더 많다. 라드도 절반 이상이 불포화다.
“식물성 = 불포화 = 건강”이라는 등식은 첫 칸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이 등식을 어디서 배웠을까.
이 단어의 이력서를 뽑아 봤다
이 등식은 발견된 것이 아니라 제작된 것이다. 제작 연도도 안다. 1911년이다.
1편에서 봤던 크리스코를 기억할 것이다. 목화씨 기름으로 만든 쇼트닝. 회사가 낸 1913년 요리책에는 원료인 목화가 한 번도 안 나오는 대신 식물성(vegetable)이 78번 나온다.
순수하게 식물성(purely vegetable)
완전히 전부 식물성(absolutely all vegetable)
처치 곤란하던 공업 원료를 식탁에 올리는 마케팅의 핵심 단어가 식물성이었다. 이 단어는 처음부터 성분 설명이 아니라 세일즈 카피로 태어났다.
이 단어가 낸 가장 큰 사고, 마가린
우리 집에도 마가린이 있었다. 아빠가 빵을 구워 줄 때면 마가린에 굽고, 발라도 먹었다. 그 시절 식물성이라는 단어는 만병통치약 같은 단어였다. 버터는 비싸고 몸에 안 좋은 것, 마가린은 실용적이고 식물성이라 괜찮은 것.
마가린의 정체를 지금은 안다. 2편에서 본 부분경화유 — 트랜스지방이다.
수십 년 동안 “버터 대신 식물성 마가린”이 건강 조언이었다. 그리고 훗날 트랜스지방의 심혈관 위해가 확정되면서 그 조언은 정확히 뒤집혔다. 건강을 위해 버터를 버린 세대가, 결과적으로 당대 최악의 기름을 빵에 발라 온 것이다.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마가린이 특별히 악랄해서가 아니다. 단어가 성분을 이기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보여준 선례이기 때문이다. 식물성이라는 단어는 트랜스지방조차 수십 년간 통과시켰다.
단어가 뇌에서 하는 일 — 헬스 헤일로
이게 개인의 어리석음이 아니라는 것도 연구로 확인돼 있다.
소비자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현상이 있다. 같은 식품이라도 라벨에 유기농, 식물성 같은 단어가 붙으면 실제 성분과 무관하게 더 건강하고, 열량도 낮게 평가된다. 후광이 씌워진다고 해서 헬스 헤일로(health halo)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단어 하나가 성분표를 읽으려는 마음 자체를 꺼 버린다. “식물성이네. 됐다.” — 심사가 끝나는 것이다.
나도 이 후광에 오래 씌워져 있었다. 한때 비건 식단에 도전한 적이 있는데, 그 시절에는 더 심했다. 식물성 고기, 식물성 크림 — 식물성이라는 단어만 붙어 있으면 별 의심 없이 샀다. 뒷면에 뭐가 적혀 있는지는 보지 않았다. 앞면의 단어가 이미 심사를 끝냈으니까.
두유와 귀리음료도 즐겨 마셨다. 식물성 음료였고, 마침 그 무렵 우유를 악마화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지금은 안 마신다. 우유를 마실 수 있는데 굳이 가공된 대체 음료를 마실 이유를 못 찾아서다. 돌아보면 그때의 선택은 성분을 보고 한 것이 아니라, 그 시기 미디어가 어느 쪽을 악당으로 정했느냐를 따라간 것이었다.
“콜레스테롤 없음”이라는 표기의 정체
식물성 기름 광고의 단골 문구다. 사실이다. 그런데 모든 식물성 기름에는 원래 콜레스테롤이 없다. 콜레스테롤은 동물의 세포가 만드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표기는 “무설탕 소금” 같은 문구다. 거짓말은 아니지만, 비교 우위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덧붙이면, 먹는 콜레스테롤이 혈중 콜레스테롤을 좌우한다는 오랜 상식도 흔들린 지 오래다. 미국 식생활지침은 2015년판부터 콜레스테롤 섭취 상한선을 없앴다. 이 이야기는 시리즈 뒤에서 다시 다룬다.
그래서 팜유는 무사했다
이제 1989년으로 돌아가면 그림이 완성된다.
우지는 “공업용”이라는 단어에 걸려 위해성 증명 없이 쫓겨났다. 팜유는 “식물성”이라는 단어를 달고 성분 검증 없이 들어왔다. 나간 것도 단어 때문이었고, 들어온 것도 단어 덕분이었다. 성분표는 어느 쪽 심사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규모를 환산해 보면 이 무사통과의 크기가 나온다. 한국인은 1인당 연간 라면을 약 79개 먹는다. 세계 최상위권이다. 봉지마다 팜유에 튀긴 면이 들어 있다. 한 단어가 통과시킨 기름을, 우리는 주 1.5회 꼴로 먹고 있는 셈이다.
우지는 성분과 무관한 단어로 유죄가 됐고,
팜유는 성분과 무관한 단어로 무죄가 됐다.
둘 다 재판정에 성분표는 없었다.
반대쪽에도 같은 잣대를
이 시리즈의 규칙대로, 칼끝을 내 쪽으로도 돌린다. 두 가지를 정직하게 적는다.
하나. “동물성”이라는 단어에도 후광을 씌우면 같은 오류다.
이 시리즈를 읽고 “동물성이면 좋은 것”으로 등식만 뒤집으면, 단어로 심사하는 습관은 그대로 남는다. 같은 버터라도 사료와 목초의 차이가 있고, 같은 동물성이라도 가공도의 차이가 있다. 기준은 단어가 아니라 공정과 성분이라는 것 — 1편에서 세운 이 원칙은 동물성이라는 단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둘. 팜유 자체는 악당이 아니다.
야자 열매의 기름은 서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서 오래 먹어 온 전통 지방이다. 정제하지 않은 붉은 팜유는 그 지역의 버터 같은 존재였다. 1편의 기준으로 보면 팜유는 씨앗이 아니라 열매에서 짠 기름이고, 리놀레산도 콩기름보다 훨씬 적다.
이 글이 문제 삼는 것은 팜유라는 기름이 아니라, 성분 심사 없이 단어로 통과된 과정이다. 우지가 단어로 유죄가 된 것이 부당했듯, 팜유가 단어로 무죄가 된 것도 심사라고 부를 수 없다. 같은 잣대다.
하나 더 정직하게 적는다. 라면 회사들을 탓하는 글이 아니다.
1989년에 우지를 계속 쓸 수 있던 회사는 없었다. 소비자가 소기름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팜유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문제는 개별 기업이 아니라, 단어로 심사하고 단어로 사면하는 우리 쪽의 습관이다.
여기서부터는 우리 집 이야기다
부모님 가게는 지금도 콩기름을 쓴다
정직 코너를 하나 더 열어야겠다. 우리 부모님은 고깃집을 하신다. 그 주방에서는 지금도 콩기름 식용유를 쓴다.
이유는 단순하다. 가격이다. 업소 주방에서 올리브유급 기름을 쓰는 것은 애초에 계산이 서지 않는다. 1편에서 적었듯 콩기름과 내가 쓰는 기름들의 가격 차이는 4~5배다. 가정에서는 감당할 수 있는 차이가 식당에서는 불가능한 차이가 된다.
그러니 부모님을 원망할 수도, 외식을 끊을 수도 없다. 이것이 이 시리즈가 계속 전제해 온 현실이다. 밖에서 씨앗기름을 완전히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싸움터는 집 부엌이고, 집에서 고르는 사람이 단어가 아니라 성분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아기 과자 뒷면에서 만난 단어들
성분표를 읽기 시작하고 가장 충격받은 코너는 어른 식품이 아니라 아기 코너였다.
아기 과자 뒷면에서 카놀라유를 심심치 않게 만난다. 유기농, 무첨가, 아이에게 안심 — 앞면의 단어들은 완벽한데, 뒷면의 기름은 어른 과자와 다르지 않다. 앞면을 읽는 부모의 마음과 뒷면의 원재료명 사이의 거리가, 이 시리즈가 다루는 문제의 압축판이다.
분유는 더했다. 국내에서 씨앗기름이 안 들어간 분유를 나는 찾지 못했다. 우리 집은 결국 고민 끝에 해외 제품으로 타협했는데 — 그것도 완벽한 선택은 아니었다 — 이 이야기는 따로 한 편을 통째로 써야 할 만큼 길어서, 예고했던 분유 편에서 제대로 다룬다.
체감 70~80%
주변에 이 이야기를 하면 반응은 대체로 비슷하다. “그래도 식물성이 더 건강한 거 아니야?”
부모님부터 그렇다. 야채는 무조건 먹어야 하는 것, 식물성은 좋은 것. 체감상 주변의 열에 일고여덟은 이 등식을 갖고 있다. 그분들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110년짜리 광고와 헬스 헤일로가 정확히 작동한 결과다. 나도 몇 년 전까지 그 일고여덟 중 하나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식물성이 나쁘다가 아니다. 단어 하나로 심사가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몸에 들어가는 것일수록, 단어에 꽂히기보다 한 번 더 비판적으로 봐야 한다.
키토를 해 보고 알게 된 것
최근에 키토 식단을 해 봤다. 그 과정에서 확실해진 것이 하나 있다. 현대인의 식단에서 씨앗기름을 빼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가공식품에는 사실상 무조건 들어 있다고 전제하는 편이 정확하다.
그래서 우리 집의 결론은 완벽주의가 아니다. 집 부엌에서는 치우고, 밖에서는 알고 먹는다. 가공식품을 집을 때도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집는다. 1편에 적었던 문장을 다시 쓴다. 알고 먹는 것과 모르고 먹는 것은 다르다.
오늘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
집에 있는 가공식품 아무거나 세 개를 뒤집어 보자. 과자, 빵, 소스, 뭐든 좋다.
원재료명에서 이 단어들을 찾으면 된다. 식물성유지, 식용유지, 팜유, 대두유, 카놀라유(채종유). 아마 세 개 중 세 개에서 나올 것이다.
오늘은 바꾸지 않아도 된다. 앞면의 단어가 아니라 뒷면의 목록을 읽는 30초 — 그 습관 하나가 이 글의 전부다. 110년 된 광고 문구를 이기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앞으로 다룰 것들
- 아기 이유식에는 무슨 기름을 쓰나
- 분유에 들어가는 기름은 규제되지 않는다 — 우리 집의 타협 이야기
- 한 번 튀긴 기름과 열 번 튀긴 기름
- 그래서 무엇으로 바꿨나 — 실전편
- 덜 먹는데 왜 더 찌나
마지막 수정: 2026년 8월 24일
참고 자료
- 소셜타임스. 「’우지 vs 팜유’ 몸에 해로운 기름은? 우지라면·삼양라면 비교해보니」. 2025.
esocialtimes.com - Marion Harris Neil. The Story of Crisco. Procter & Gamble. 1913.
- Helen Zoe Veit. Eating Cotton: Cottonseed, Crisco, and Consumer Ignorance. Journal of the Gilded Age and Progressive Era 18(4). 2019.
- NPR. The Forgotten Fascinating Saga of Crisco. 2012.
npr.org - Anguyo G 외. What is in a label: Effects of labeling on the preference for plant-based products. Appetite. 2024.
sciencedirect.com - Sánchez-Bravo P 외. Organic food labels bias food healthiness perceptions. Appetite. 2022.
sciencedirect.com - 한국무역협회(KITA). 「한국인의 라면 사랑 — 1인당 한해 79개 먹어 세계 2위」.
kita.net - USDA FoodData Central. Beef tallow / Palm oil 지방산 조성.
fdc.nal.usda.gov - HHS·USDA. Dietary Guidelines for Americans 2015–2020 (콜레스테롤 섭취 상한 삭제). 2015.
식물성 기름은 다 건강한 기름 아닌가요?
아니다. 식물성은 원료가 식물에서 왔다는 출신 표시일 뿐 품질이나 성분 표시가 아니다. 포화지방 비율이 가장 높은 축인 코코넛오일과 팜유도 식물성이고, 트랜스지방 덩어리였던 마가린도 식물성으로 팔렸다. 반대로 오리기름이나 라드는 동물성이지만 불포화지방이 절반을 넘는다. 단어가 아니라 각 기름의 지방산 조성과 가공 공정을 봐야 한다.
팜유는 나쁜 기름인가요?
팜유 자체가 악당은 아니다. 야자 열매에서 짠 기름은 서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서 오래 먹어 온 전통 지방이고, 리놀레산도 콩기름보다 훨씬 적다. 문제는 팜유의 포화지방이 우지와 맞먹는 수준인데도 1989년 우지파동 이후 성분 심사 없이 ‘식물성’이라는 단어만으로 우지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과정이다. 우지가 단어로 유죄가 된 것이 부당했듯, 팜유가 단어로 무죄가 된 것도 심사라고 부르기 어렵다.
‘콜레스테롤 없음’ 표시는 무슨 의미인가요?
사실이지만 정보는 아니다. 콜레스테롤은 동물의 세포가 만드는 물질이라 모든 식물성 기름에는 원래 들어 있지 않다. 그러니 식물성 기름의 ‘콜레스테롤 없음’ 표기는 ‘무설탕 소금’ 같은 문구로, 비교 우위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마케팅에 가깝다. 참고로 미국 식생활지침은 2015년판부터 식이 콜레스테롤 섭취 상한선을 없앴다.
헬스 헤일로 효과가 무엇인가요?
라벨의 특정 단어가 제품 전체에 건강 후광을 씌우는 소비자 심리 현상이다. 같은 식품이라도 유기농, 식물성 같은 단어가 붙으면 실제 성분과 무관하게 더 건강하고 열량도 낮게 평가된다는 것이 여러 소비자 연구에서 반복 확인됐다. 단어 하나가 성분표를 읽으려는 마음 자체를 꺼 버리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럼 장 볼 때 뭘 확인해야 하나요?
앞면의 단어가 아니라 뒷면의 원재료명이다. 식물성유지, 식용유지, 팜유, 대두유, 카놀라유(채종유) 같은 항목을 찾아 읽는 30초면 된다. 가공식품 대부분에 들어 있으므로 전부 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알고 고르는 것과 모르고 고르는 것은 다르며, 특히 아기 과자처럼 앞면의 안심 문구가 강한 제품일수록 뒷면을 확인할 가치가 있다.
마지막 수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