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고기와 지방 이유식」 시리즈 8편 중 2편입니다. → 전체 목차 보기
지난 글 끝에 질문을 하나 미뤄뒀다. 왜 하필 쌀미음일까.
답을 찾는 데 오래 걸렸는데, 자료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너무 많은데 다 똑같아서였다.
이유는 세 개였다
어디를 봐도 같은 셋이 나왔다.
알레르기가 적다. 소화가 편하다. 철분이 강화돼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나씩 짚어보니 성격이 전혀 달랐다.
소화가 편하다. 맞는 말인데 쌀만 그런 건 아니다. 곱게 익힌 고구마도, 잘 으깬 노른자도 마찬가지다. 쌀을 골라야 할 이유라기보다 쌀이 안 될 것도 없다는 얘기에 가깝다.
철분이 강화돼 있다. 이건 좀 이상했다. 강화돼 있다는 건 원래는 없다는 뜻이다. 쌀이 철분을 준다는 얘기가 아니라, 쌀이 철분을 실어 나르기 좋은 그릇이라는 얘기다. 이 그릇 이야기는 뒤에서 마저 하겠다.
알레르기가 적다. 세 번째가 진짜였다.
쌀을 다른 곡물이 아니라 쌀이게 만든 이유가 이거였다. 미국소아과학회가 철분 강화 쌀 시리얼을 첫 보충식으로 권한 근거를 보면 여러 이유가 나열되는데, 그중 하나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가장 낮다는 것이었다.
논리가 깔끔하다. 아기 몸은 아직 낯선 단백질에 약하니까, 가장 순한 것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늘려간다. 이유식 단계표가 왜 그렇게 생겼는지도 여기서 설명된다.
이 논리를 따라가봤다. 끝이 이상했다.
늦추면 안전하다는 생각
2000년에 미국소아과학회는 알레르기 위험이 높은 아이에게 특정 식품을 늦추라고 권고했다. 우유는 만 한 살까지, 달걀은 두 살까지, 땅콩과 견과류와 생선은 세 살까지.
고위험군 대상 권고였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넓게 퍼졌다. 많은 소아과의사가 일반 아이에게도 비슷하게 조언했다.
지금 우리가 아는 이유식 단계표의 뼈대가 이때 만들어졌다. 순한 것부터, 위험한 건 나중에, 하나씩 천천히. 그 맨 앞자리를 쌀이 차지한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그런데 뒤집혔다
2008년에 미국소아과학회는 이 권고를 상당 부분 거둬들였다. 알레르기 유발 식품의 도입을 늦추지 말라는 쪽으로 돌아섰다.
결정타는 2015년이었다. 알레르기 위험이 높은 영국 아기 640명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대조 시험(LEAP)에서, 생후 4~11개월에 땅콩을 먹기 시작한 그룹은 다섯 살 시점 땅콩 알레르기가 3.2%였다. 피한 그룹은 17.2%였다. 상대 위험이 80% 줄었다.
2019년 정책 보고서에서 학회는 정리했다. 땅콩, 달걀, 생선 같은 식품의 도입을 생후 4~6개월 이후로 늦추는 것이 알레르기 질환을 예방한다는 근거는 없다고.
곡물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6년에 나온 연구는 곡물의 첫 노출을 6개월 이후로 미루면 밀 알레르기 위험이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늦추는 게 안전하다는 전제 자체가 흔들린 것이다.
쌀이 첫 음식이 된 가장 쌀다운 이유가, 지금은 유효하지 않다.
쌀은 그대로 남아 있다.
원래 어디서 온 관행일까
논리가 사라졌는데 관행이 남았다면, 그 관행은 논리보다 먼저 있었다는 뜻이다. 거슬러 올라가봤다.
곡물 죽은 오래됐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됐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나온 육아서 대부분에 아기 음식 조리법이 실려 있다. 밀가루나 빵가루를 물이나 우유에 끓인 것, 곡물을 묽게 끓인 것, 빵과 곡물을 육수에 끓인 것. 15세기 초기 인쇄본에도 관련 기록이 나온다. 아기용 수유 용기는 청동기시대 유물부터 있다.
아기에게 따로 만들어 먹이는 음식은 최근 발명품이 아니다. 다만 그게 어떤 자리에 있었는지는 지금과 달랐다.
당시 곡물 죽은 주로 모유를 대신하거나 보충하는 자리에 있었다. 어머니가 아프거나, 젖이 부족하거나, 일하러 나가야 할 때. 한 연구는 19세기 베네치아의 인구등록부를 분석해, 가장 가난한 어머니들은 수유 기간이 한 달을 넘지 않은 반면 다른 계층은 6~8개월 이상 이어갔다고 추정했다. 직접 수유 기록이 아니라 영아 사망 양상에서 이유 시점을 추정한 결과다.
반대 패턴도 있었다. 부유층이 아이를 유모에게 맡기고 젖을 일찍 뗀 경우다. 계급과 지역과 시대에 따라 사정이 달랐고,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공통점은 하나다. 곡물 죽은 오랫동안 젖을 대신하는 자리에 있었지, 아기에게 가장 좋은 음식이라는 자리에 있지 않았다.
씹어서 주던 시절
그럼 젖 말고 처음 먹는 음식은 뭐였을까.
여러 문화에서 오래 쓰인 방식이 하나 있다. 어른이 대신 씹어서 주는 것이다. 학술 용어로는 저작 전처리라고 한다.
전 세계 민족지 자료를 모아 분석한 연구에서, 영아 수유 기록이 있는 문화의 3분의 1 이상이 이 관행을 보고했다. 대륙과 생계 방식을 가리지 않았다.
실제로는 더 흔했을 것이다. 중국 대학생에게 물었더니 63%가 아기 때 씹어준 음식을 받았다고 답했는데, 정작 한족 중국을 다룬 여덟 건의 민족지 연구 중 어느 것도 이 관행을 기록하지 않았다.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이걸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침을 통한 병원체 전달 가능성이 있고, 한 관찰 연구에서는 설사 발생률이 더 높게 나왔다. 인과가 확정된 건 아니어도 굳이 감수할 이유가 없다.
이 사실이 알려주는 건 다른 쪽이다. 아기 전용 음식이 따로 있던 문화도 있었지만, 아기가 어른 밥상의 것을 먹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이가 없다는 게 다른 메뉴를 먹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좋은 의도로 시작해서
관행이 지금 형태로 굳은 건 20세기다. 그런데 이 대목을 알아보다가 내 짐작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나는 산업 이유식이 처음부터 장사 논리로 만들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1930년 토론토 아동병원의 소아과의사들이 아기용 시리얼을 개발했다. 당시 아이들이 병원에 오는 가장 큰 이유가 비타민 D 부족으로 인한 구루병이었고, 대공황기 영양실조도 심각했다. 통밀과 우유, 골분과 철분을 넣은 배합을 동물과 가족과 환자에게 먹여가며 설사나 변비를 일으키지 않는 조합을 찾아냈다. 밀과 귀리와 옥수수를 섞은 다곡물 제품이었고, 판매 로열티는 25년간 병원 연구비로 들어갔다.
공중보건 성과다. 실제로 수많은 아이를 구했다.
이 이야기에 악당은 없다. 그 뒤에 벌어진 일이 있을 뿐이다.
이 방식이 성공하자 시장이 생겼다. 곡물 가루는 오래 보관된다. 물만 부으면 어디서든 만들어진다. 맛이 밍밍해서 뭘 섞어도 튀지 않는다. 그리고 부족한 영양소를 나중에 넣기 좋다. 병원이 아니라 공장이 만들기에 이만한 형태가 없었다.
거기에 알레르기 논리가 얹히면서 쌀이 앞자리를 차지했다.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형태에, 당시로선 그럴듯했던 이유가 붙어, 표준이 됐다.
그리고 그 이유가 사라진 뒤에도 형태는 남았다.
여기까지가 내가 찾은 범위다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고 싶다.
오래된 기록일수록 해석의 폭이 넓다. 위에 적은 것들은 확정된 사실이라기보다 남아 있는 자료가 가리키는 방향에 가깝다. 강화 식품이 실제로 수많은 아이의 결핍을 막아온 것도 사실이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니 이 역사는 누가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왜 이렇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철분이라는 그릇
앞에 미뤄둔 이야기를 마저 한다.
쌀 시리얼을 권한 또 하나의 큰 이유가 철분이었다. 아기가 태어날 때 저장해둔 철분이 생후 6개월쯤 줄어드는데, 모유는 철분 농도가 낮은 편이라 다른 데서 채워야 한다. 그래서 철분을 강화한 곡물 시리얼이 나왔다.
논리는 맞다. 한 번 더 생각하면 이상하다.
쌀에는 철분이 거의 없다. 그래서 넣어야 했다. 철분이 필요하다는 게 이유라면, 처음부터 들어 있는 걸 주면 되지 않나.
고기에는 철분이 있다. 흡수가 잘 되는 형태로 있다. 넣지 않아도 원래 있다.
실제로 지금 미국소아과학회는 모유만 먹는 만삭아에게 생후 4개월부터 체중 1킬로그램당 하루 1밀리그램의 철분을 따로 보충하도록 권한다. 철분이 든 보충식을 시작하는 6개월까지 기다리는 선택지도 함께 제시한다. 그리고 그 “철분이 든 음식”의 예로 강화 시리얼과 고기를 나란히 든다.
경로는 여러 개다. 물약으로 줄 수도 있고, 원래 들어 있는 음식으로 줄 수도 있고, 없는 음식에 넣어서 줄 수도 있다. 쌀 시리얼은 그중 세 번째다.
셋 다 유효하다. 다만 세 번째가 유일한 길인 것처럼 이야기되는 건 이상하다. 특히 우리 집처럼 매 끼 직접 만들어 먹이는 경우라면 더 그렇다.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여기까지는 대부분 서양 이야기다. 우리는 어땠을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육아」 항목에 이런 서술이 있다. 분유가 보급되면서 아기가 원할 때 젖을 물리던 방식이 정해진 시간에 먹이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젖떼기가 생후 3~6개월로 앞당겨졌으며, 그러면서 외국의 이유식이 수입되고 국내에서도 각종 이유식이 개발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원래 곡물로 만든 이유 음식이 있었다. 미음이든 죽이든 밥을 말아 먹이든. 서양 방식이 들어와서 없던 걸 만든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들어온 방식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았다는 점으로 보인다. 원래 있던 것과 들어온 것이 겹쳤고, 그래서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의심할 계기 자체가 없었던 셈이다.
이 대목은 내가 아직 충분히 알아보지 못했다. 한국의 이유식 관행이 언제 어떻게 표준이 됐는지는 따로 정리해보려 한다.
어머니의 쌀
1편에 이런 장면을 적었다. 아이를 어머니께 맡겼더니 전화가 왔다. 애 먹일 게 반찬밖에 없다고.
그때 어머니가 이상했던 건 아니다. 어머니 세대에게 한 끼에 쌀이 들어가는 건 협상 대상이 아니었다.
그럴 만하다. 지금이야 흰쌀밥이 흔하지만 그분들이 자랄 때는 아니었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왜 있었겠나. 쌀이 있는 밥상과 없는 밥상은 메뉴 차이가 아니라 형편의 차이였다.
그런 시절을 지나온 사람에게 쌀 없는 상은 상이 아니다. 그건 무지가 아니라 기억이다.
그래서 결론은
이번 글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하나다.
쌀이 첫 음식이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지금 유효하지 않다.
알레르기를 피하려고 늦추는 전략은 뒤집혔다. 철분은 쌀에 없어서 넣은 것이고, 넣지 않아도 되는 경로가 있다. 소화가 편한 건 쌀만의 특징이 아니다.
쌀미음으로 잘 하고 있다면 그걸 바꾸라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다들 이렇게 하니까”는 근거가 아니다. 그건 이유가 사라진 뒤에도 남은 형태다. 나는 그걸 알고 나서야 다르게 시작할 수 있었다.
한 가지가 남는다. 쌀에 철분을 넣어야 했다면, 그 철분은 대체 뭘 하는 걸까. 왜 하필 이 시기에 그렇게 중요할까.
다음 글은 거기서 시작한다.
← 1편: 왜 쌀미음 대신 고기부터 먹였나
3편: 6개월에 아기가 필요한 철분이 스무 배로 뛴다
참고 자료
- Du Toit G, Roberts G, Sayre PH, et al. Randomized Trial of Peanut Consumption in Infants at Risk for Peanut Allergy.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2015;372(9):803–813. (LEAP 연구, 무료 전문 PMC4416404)
- Pelto GH, Zhang Y, Habicht JP. Premastication: the second arm of infant and young child feeding for health and survival? Maternal & Child Nutrition. 2010;6(1):4–18.
- Infant Feeding in History: an Outline. TGHN Collections. (오픈 액세스)
- Fildes V. Breasts, Bottles and Babies: A History of Infant Feeding. Edinburgh University Press, 1986.
마지막 수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