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전 쌀 없는 이유식 1년, 아기는 뭘 먹었나 | 고기와 지방 이유식 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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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뭐 먹을 게 있는데?”

첫째와 같은 시기에 아이를 낳은 친구가 물었다. 시판 이유식을 먹인다는 친구에게 우리 집 이유식을 대충 설명하고, 쌀은 돌 지나서 시작할 거라고 말한 참이었다.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사실 이 시리즈를 쓰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기도 하다. 가족이 물었고, 친구가 물었고, 6편 끝에서 답을 예고하기도 했다. 돌 전에 쌀을 왜 미뤘는지, 그리고 쌀이 빠진 자리를 뭘로 채웠는지.

시작하기 전에 분명히 해둘 게 있다. 나는 쌀을 끊은 게 아니라 미뤘다. 쌀이 나쁜 음식이라서가 아니다. 돌 전 아기에게는 쌀보다 급한 게 있었고, 아기 배는 둘을 다 담기엔 작았기 때문이다.

어머니께 하다 만 효소 이야기

1편에서 어머니가 “반찬밖에 없다”고 전화하셨던 날을 썼다. 그때 나는 지금은 전분을 소화시키는 효소가 본격적으로 나오는 때가 아니라고 말씀드렸다. 효소 이름까지는 꺼내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여기서 마저 한다.

전분을 자르는 주력 효소는 췌장 아밀라아제다. 밥과 죽의 전분을 포도당 조각으로 잘게 자르는 가위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 가위가 아기 몸에는 아직 없다.

태아에게서는 검출되지 않고, 생후 3개월까지도 바닥 수준이다.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하는 건 6개월 무렵부터고, 어른 수준에 도달하는 시점은 빠르면 6개월, 늦으면 두 돌 사이로 본다.

주력 가위는 늦게 출근한다영아 췌장 아밀라아제 발달 곡선성인 수준출생3개월6개월두 돌여기까지 바닥 수준6개월부터 본격 상승성인 수준 도달은 빠르면 6개월, 늦으면 두 돌 — 개인차가 크다보조 가위(침·모유·소장 글루코아밀라아제)는 따로 있다 · Frontiers in Pediatrics 2022

공정하게 적어둔다. 아기가 전분을 아예 소화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침에도 아밀라아제가 있고, 모유에도 들어 있다.

소장 벽에는 태어날 때부터 어른 수준으로 갖춰진 글루코아밀라아제라는 보조 가위도 있다. 그러니 쌀죽을 먹이면 큰일 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내 판단은 이랬다. 주력 장비가 아직 출근 전인 시기다. 소화 준비가 덜 된 음식과, 소화할 준비가 되어 있고 당장 필요하기까지 한 음식이 있다면, 후자부터 주는 게 순서다.

진짜 이유는 효소가 아니라 자리싸움이다

효소는 절반의 이유다. 나머지 절반이 더 결정적이었다. 아기 위는 작고, 한 끼에 담을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다. 쌀죽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 뭔가는 밀려난다.

쌀죽, 특히 초기 미음은 대부분 물과 전분이다. 철도, 아연도, 비타민B12도 거의 없다.

그런데 6개월 아기에게 가장 급한 영양소가 바로 철분이다. 태어날 때 받아온 저장분이 바닥나면서 필요량이 스무 배로 뛰는 시기라는 건 3편에서 썼다. 모유 열량의 절반 가까이가 지방이고, 그 지방이 첫돌까지 급격히 자라는 뇌의 재료라는 건 4편에서 썼다. 쌀죽으로 배를 채우면 이 둘이 밀려난다.

아기 위는 작다 — 같은 자리, 다른 내용물한 끼에 담을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다전분쌀미음으로 채우면철 ✕ · 아연 ✕ · B12 ✕단백질·미량영양소지방고기·지방 반찬으로 채우면철 ○ · 지방 ○ · B12 ○쌀죽이 자리를 차지하면, 지금 급한 철분과 지방이 밀려난다

이건 나만의 유별난 계산이 아니다. WHO가 2023년에 낸 보완식 가이드라인은 6~23개월 아기에게 고기·생선·계란 같은 동물성 식품을 매일 먹이라고 권고하면서, 전분질 주식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전분질 식품은 철·아연·비타민B12의 좋은 공급원이 아니고, 흡수를 방해하는 항영양소까지 들어 있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문서의 식단 모델링에는 더 구체적인 숫자가 나온다. 6~8개월 아기의 최적 식단에서 전분질 주식에 배정된 양은 주당 53그램.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에 그렇다. 그보다 늘리면 칼슘·아연·비타민B군 기준을 맞출 수 없게 된다는 경고가 붙어 있다.

WHO 최적 식단 속 전분질 주식생후 6~8개월 · 식단 모델링 기준주당 53g하루가 아니라 일주일에이보다 늘리면 칼슘·아연·비타민B군 기준 미달 · WHO 2023

인류사를 보면 이 순서가 낯설지 않다. 2편에서 쌀미음이 표준이 된 역사를 다뤘지만, 그 역사는 길어야 수백 년이다. 약 1만 년 전 농경이 시작되고 주된 칼로리가 곡물로 넘어간 뒤 유골에서 철 결핍의 흔적이 늘었다. 철분 강화 시리얼이 없던 시대, 아기가 철을 얻을 곳은 어른이 잘게 다져 주던 고기와 내장뿐이었다.

우리 집은 어떻게 했나

식단 얘기를 하면 다들 비장한 밥상을 상상하는데, 실제 식탁은 수수했다. 고기 반찬이 메인이고, 고구마 조금. 단호박에 버터를 넣고 퓨레로 만들어 간식으로 줄 때도 있었다. 원칙이 하나 있다면, 뿌리채소로 탄수화물을 주더라도 버터나 치즈 같은 동물성 지방을 항상 함께 냈다는 것 정도다.

떡뻥 문제도 있었다. 할머니는 손주에게 간식 주는 재미로 사신다. 나는 떡뻥을 금지하는 대신 개수만 통제했다. 할머니 손은 빠르고, 나는 옆에서 개수를 세는 사람이 됐다.

가끔 먹는 쌀과자 몇 개가 방향을 무너뜨린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수제 육포와 비프칩을 만들어 간식 선반의 지분을 조금씩 빼앗아 왔다.

고백하자면 걱정의 방향이 남들과 반대였다. 쌀을 못 먹여서 불안한 게 아니라, 탄수화물 비중이 자꾸 커질까 봐 마음이 쓰였다. 돌이 지나 밥맛을 알게 되면 아이는 알아서 탄수화물을 찾는다.

그 전까지는 지금 꼭 필요한 것부터 채워주고 싶었다. 다만 총열량이 모자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있었고, 그래서 지방을 아끼지 않았다. 같은 무게라면 지방은 탄수화물의 두 배가 넘는 열량을 낸다.

같은 무게, 두 배가 넘는 열량1g당 열량지방9 kcal탄수화물4 kcal총열량이 모자랄까 하는 걱정을 지방으로 풀었던 이유

솔직히 아직 모르는 것

돌 전은 판단이 섰는데, 돌 이후는 지금도 답을 찾는 중이다.

공식 기준부터 폭이 넓다. 한국인 영양소 섭취기준에서 1세 이상 탄수화물 권장섭취량은 하루 130그램인데, 이는 뇌가 쓰는 포도당량을 기준으로 잡은 최소선에 가까운 개념이다. 기준을 만든 문서 스스로 그렇게 밝히고 있다.

반면 에너지적정비율로는 탄수화물 50~65%를 제시한다. 2025년 개정에서 하한이 55%에서 50%로 내려온 숫자다. 최소선과 권장 비율 사이의 간극이 크고, 그 사이 어디가 최적인지는 확립된 답이 없다.

돌 이후 탄수화물, 기준의 폭2025 한국인 영양소 섭취기준 · 1세 이상최소선권장섭취량 130g/일 — 뇌 포도당 기준적정비율에너지의 50~65%이 사이 어디가 최적인지, 확립된 답은 없다우리 집의 답: 주되, 주인공 자리는 내주지 않는 정도

곡물을 늦추라고 말하는 쪽의 대표 격인 웨스턴 프라이스 재단은 곡물을 모든 식품군 중 가장 마지막에, 돌 이후에 시작하라고 권한다. 다만 이 권고는 임상시험이 아니라 전통 식단 관찰에 기반한다. 나는 방향에 공감하지만, 근거의 무게는 다르게 달아둔다.

그래서 우리 집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돌이 지난 지금도 탄수화물을 주되, 주인공 자리는 내주지 않는 정도. 이게 정답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아이마다 먹는 양도 크는 속도도 다르니, 성장이나 발달이 걱정된다면 소아과 의사와 상담하는 게 먼저다.

그 질문에 다시 답한다면

“그럼 뭐 먹을 게 있는데?”

이제는 답이 길다. 소간 퓨레가 있었고, 버터에 익힌 노른자가 있었고, 코코넛크림에 조린 대구가 있었다.

잘게 다진 소고기가 있었고, 버터를 품은 단호박이 있었다. 쌀이 빠진 식탁은 비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재료가 눈에 보이는 식탁이었다.

쌀이 빠진 식탁에 있던 것들그럼 뭐 먹을 게 있는데 — 에 대한 답소간 퓨레버터에 익힌 노른자코코넛크림에 조린 대구잘게 다진 소고기버터를 품은 단호박비어 있지 않았다 — 재료가 눈에 보이는 식탁이었다

그리고 돌이 지났다. 미뤄뒀던 쌀이 마침내 식탁에 오르는 날이 왔다. 둘째가 처음 밥그릇을 마주한 날의 이야기는 시리즈 마지막 편에서 한다.


6편: 소간을 먹이며 내가 걱정한 것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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