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을 올리고 나서 스레드와 댓글로 질문을 꽤 받았다. 그런데 재료 얘기가 아니었다.
“쵸퍼 뭐 쓰세요?” “이유식 마스터기 꼭 사야 하나요?” “큐브는 몇 개짜리로?”
1편 마지막에 이렇게 써놓고도 말이다. 은하수 항해에서 중요한 건 우주선 기종이 아니라 화물이라고.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3편이지만 번외편에 가깝다. 재료가 아니라 장비 얘기다.
내가 산 것, 안 쓰게 된 것, 둘째 때 다시 산 것, 그리고 처음부터 사지 말았어야 했던 것. 우리 집 장비창고를 문 열고 재고 조사를 하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다. 장비는 필요하다. 다만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게 필요하고, 남는 돈과 시간은 화물칸으로 가야 한다.
히치하이커에게 가장 중요한 장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는 장비 편이 있다. 은하계를 떠도는 히치하이커에게 가장 쓸모 있는 물건이 뭔지 안내서가 직접 정해준다.
수건이다. 우주선도 광선총도 아니고 수건. 덮고 자고, 깔고 앉고, 젖은 몸을 닦고, 급하면 무기도 된다.
안내서의 논리는 단순하다. 한 물건이 얼마나 많은 상황에서 쓰이느냐, 그게 장비의 가치다.
이유식이라는 은하수에서 내 수건은 칼이었다. 재료 손질부터 다지기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서 떠나지 않은 유일한 장비.
그리고 이 기준 하나로 이유식 도구 시장의 대부분이 걸러진다. 딱 한 가지 일만 하는 장비, 이유식 때만 쓰고 창고로 가는 장비는 수건이 아니다.
우리 집 장비창고 재고 조사
첫째 이유식을 앞두고 샀던 것들을 기억나는 대로 다 적어봤다. 지금 어떻게 됐는지까지.
| 첫째 때 산 것 | 지금의 운명 |
|---|---|
| 세라믹 칼 | 속 터져서 퇴출. 좋은 칼로 교체. 아래에서 자세히 |
| 이유식용 도마 | 재료별(고기·생선·채소) 구분용으로 계속 사용 |
| 실리콘 큐브틀 | 이유식 내내 주력. 끝나면 처치 곤란 |
| 스텐 냄비·스텐 팬 | 지금도 매일. 둘째 때 스텐 프라이팬 하나 추가 |
| 저울 | 처음 레시피 잡을 때만. 숙달되면 숟가락 계량 |
| 식판(실리콘·스텐) | 스텐만 살아남음 |
| 숟가락 | 작은 스푼은 결국 스텐 범용 유아 스푼으로 전부 교체 |
| 턱받이(천·실리콘·PP) | PP만 살아남음. 아래에서 자세히 |
| 의자(트립트랩) | 이유식이 끝나도 식탁의 붙박이. 가장 잘 산 물건 |
| 유리·실리콘 저장 용기 | 큐브 졸업 후 주력. 유아식까지 계속 |
둘째 때 새로 산 건 셋이다. 이유식 마스터기, 식품건조기, 스텐 프라이팬. 이 중 하나는 사고 나서 후회했고, 하나는 사고 나서 첫째 때 왜 없었나 싶었다. 어느 쪽이 어느 쪽인지는 곧 나온다.
저울 얘기를 한 줄만 하고 가자. 저울은 쓰긴 쓴다. 처음 레시피를 잡을 때, 버터 한 스푼이 몇 그램인지 감을 익힐 때까지다.
그 뒤로는 숟가락으로 계량한다. 아기 울고 팬은 달아오르는데 매번 저울질할 시간이 어디 있나.
도구를 고르는 두 가지 기준, 아니 세 가지
이유식 도구를 고를 때 내가 가장 크게 본 가치는 하나다. 막 써도 손상이 안 가는가.
이유식을 시작하면 정신이 없다. 먹이기 바쁘고, 치우기 바쁘고, 다음 끼니 준비하기 바쁘다. 도구를 애지중지 관리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던져놔도 되고, 긁혀도 되고, 뜨거운 데 올려도 되는 물건이 이긴다. 스텐이 막 쓰기 좋은 이유다.
두 번째는 관리의 편의성이다. 세척이 몇 단계인가, 분리해서 말려야 하는가.
이유식 마스터기가 초반엔 잘 쓰이다가 후반에 방치되는 이유가 정확히 이거다. 분리 세척하고 건조하는 게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세 번째는 수건의 기준, 범용성이다. 두루두루 많이 쓰이는 도구가 최고의 도구다. 아기용으로 나온 물건은 대개 이 기준에서 탈락한다.
세 줄 채점표. 아기용으로 나온 물건은 대개 ③에서 떨어진다.
이유식 마스터기의 흥망
이유식 마스터기는 스팀기와 믹서가 한 몸이라 편하긴 하다. 찌고 바로 갈린다.
문제는 한 번에 만들 수 있는 양이다. 적다. 초반, 아기가 30g 먹던 시절엔 유용했고, 양이 늘면서부터는 찜기 부분만 쓰다가 아예 안 쓰게 됐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2편에서 봤듯 우리 집 조리는 기름에 볶는 게 주력이다. 스팀기가 나설 자리가 별로 없다.
고구마나 호박도 찌기보다 오븐에 굽는 쪽을 자주 했다. 맛도 식감도 굽는 게 상위호환이라고 본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찌는 게 필요하면 어른들 쓰는 스팀기에 같이 찌면 된다. 굳이 아기용 스팀기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있으면 좋긴 한데, 굳이.
그러니 이렇게 정리하겠다. 죽 이유식이라면 초반 몇 주는 편할 수 있다. 하지만 동물성 지방을 주연으로 세우는 이유식이라면, 20만 원 가까운 거금을 스팀기 용도로 쓸 이유는 없다.
둘째 때 하나 더 산 게 이거다. 사고 나서 후회한 쪽.
쵸퍼보다 좋은 도구가 집에 이미 있다
스레드에서 가장 자주 받은 도구 질문이 쵸퍼다. 나는 쵸퍼를 안 쓴다.
쵸퍼보다 더 좋은 도구가 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의 손이다.
내가 2편 내내 강조한 질감과 덩어리 식감을 위해서는 재료를 손으로 으깨거나 찢거나 칼로 다지는 게 낫다. 불규칙하고, 쵸퍼보다 약간 굵은 입자가 나온다.
그게 잇몸으로 씹기에 딱 좋은 형태다. 쵸퍼는 몇 번 돌리면 균일한 입자가 나오고, 조금만 지나치면 죽에 가까워진다. 씹기 골든타임 얘기는 5편 「이가 없어도 아기는 씹는다」에 써뒀다.
쵸퍼는 간간이 날이 나가는 이슈도 있다. 아기 음식에 들어가는 물건이라 리스크로 본다.
사도 된다. 다만 처음부터 사지는 마라. 해보고 나서 쵸퍼 쓸 일이 정말 많으면 그때 사면 된다. 나는 끝까지 칼로 다졌다. 입자도 크기도 내 마음대로 되니까.
쵸퍼 살 돈으로 칼을 좋은 걸로 사라. 이 문장은 아래에서 한 번 더 나온다.
믹서는 아기용을 사지 마라
블렌더는 따로 안 샀다. 신혼살림으로 산 대용량 고성능 믹서를 그대로 썼다.
아기용이라고 나오는 소형 믹서는 힘이 약하다. 내가 믹서를 돌리는 때는 비살균 산양유로 수제 분유를 만들 때, 소간 기반 동물성 분유를 만들 때, 단호박 버터 퓨레나 소스류를 뽑을 때다.
전부 힘 좋고 곱게 갈리는 대용량 믹서가 있어야 되는 일이고, 소형 아기용 믹서로는 아예 안 된다.
핸드믹서(도깨비방망이)는 잘 안 썼다. 애초에 퓨레 위주로 안 갔기 때문이고, 파워도 약하고, 퓨레 말고는 쓸 데가 애매하다. 갈아야 하면 그냥 믹서를 돌리면 된다.
정리하면 믹서는 아기용을 사지 말고 범용으로 성능 좋고 용량 큰 걸 하나 두는 게 맞다. 이유식이 끝나도 집에서 제일 오래 쓰는 가전이 된다.
큐브틀과 소분 용기, 처음부터 다 사지 마라
우리 집 방식은 미리 만들어서 큐브틀에 소분 냉동하고, 먹일 때마다 해동하는 것이었다. 큐브틀은 필수다.
실리콘 큐브틀을 30g부터 용량별로 썼다. 각얼음보다 조금 큰 크기다.
단, 처음부터 세트로 다 사지 마라. 몇 번 해보고 내가 며칠분을 한 번에 만들지 정해진 다음에 그에 맞는 용량을 사는 게 맞다.
큐브틀은 이유식 때는 훌륭한데 끝나면 처치 곤란이다.
대신 손바닥만 한 유리 또는 실리콘 소분 용기를 사라. 이건 이유식이 끝나도 산다. 유아식까지 끝나면 고춧가루든 무슨 가루든 담아두면 된다. 수건 기준 합격이다.
양이 늘면 큐브 여러 개를 조합하는 것보다, 미리 섞어서 한 끼 분량으로 얼려두고 전자레인지만 돌려 서빙하는 게 편하다. 외출할 때도 용기째 하나 들고 나가면 끝이다.
큐브와 병행해도 되고, 후기부터는 용기 쪽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실리콘의 냄새와 세제 흡착
실리콘은 냄새와 세제 흡착 이슈가 있다. 관리만 하면 괜찮다. 우리 집 방식은 이렇다.
냄새는 오븐에 120도로 30분 구워주면 빠진다. 세제 흡착은 물에 베이킹소다 한두 스푼 넣고 팔팔 끓여 15분 정도 두면 된다.
매번 할 필요는 없다. 설거지, 베이킹소다 15분, 오븐 120도 30분. 가끔 이 순서로 한 번 돌리면 냄새도 안 나고 잔여 세제 이슈도 해결된다.
실리콘은 관리만 하면 괜찮다. 세 단계, 가끔 한 번.
의자는 이유식 도구가 아니다
이유식 의자는 하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유는 이유식 때문이 아니다.
아기가 안 먹는 날에도 우리 집은 아기를 식탁에 같이 앉힌다. 가족이 밥 먹는 자리에 아기가 있는 것, 나는 이게 교육적으로도 정서 발달에도 좋다고 본다.
먹이는 도구가 아니라 식탁의 멤버십이다. 우리 집은 트립트랩을 썼고, 첫째가 네 살인 지금도 식탁에 그대로 있다.
굳이 트립트랩처럼 끝판왕을 살 필요는 없다. 다만 나는 비싸고 좋은 걸 사서 오래 쓰자는 주의다.
트립트랩은 신생아 세트를 달면 갓난아기를 잠깐 눕히는 용도로도 쓰고, 발판이 조절돼서 성인까지 앉는다고 한다. 좀 오버이긴 한데, 범용성과 효율성이라는 내 채점표에 정확히 맞아떨어져서 질렀다.
이 시리즈에서 내가 이상적이라고 말하는 이유식과 유아식은 가족이 한 재료를 놓고 같이 먹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도 그랬다. 의자는 그 그림의 첫 조각이다.
턱받이, 천도 실리콘도 아니다
턱받이는 엄마 아빠의 치우는 시간을 줄여주는 효자템이다. 단, 어떤 턱받이냐가 문제다. 우리 집은 세 종류를 다 거쳤다.
천 턱받이는 옷에 안 묻게 해주는 것 말고는 하는 일이 없다. 흘린 음식은 그대로 바닥으로 간다. 턱받이의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므로 안 쓴다.
실리콘은 천보다는 흘리는 음식을 잘 받는다. 그런데 토마토처럼 색 있는 음식은 이염되고, 무엇보다 설거지할 때 낭창낭창해서 빨리 안 닦인다. 답답해서 몇 번 쓰고 접었다.
살아남은 건 PP 턱받이다. 베이비뵨 사라. 두 번 사라. 턱받이계의 메시다. 어린이집에서도 이걸 사서 보내라고 한다. 작은 사이즈와 큰 사이즈가 있다.
딱딱하니 흘린 건 다 받고, 물로 헹구면 끝나고, 던져도 된다. 세 줄 채점표를 전부 통과하는 몇 안 되는 아기용품이다.
식판, 흡착식판, 숟가락
식판은 스텐을 추천한다. 막 쓰기 좋고, 던져도 되고, 열탕 소독이 된다. 단 새 제품은 연마제를 닦아내고 써야 한다.
식용유 묻힌 키친타월로 닦아내는 방식이 널리 안내돼 있는데, 이게 은근 힘들다. 그냥 연마제 제거제를 하나 사라. 스텐 팬 눌어붙은 것 지울 때도, 오븐 용기 기름때 지울 때도 두루두루 쓴다.
요즘은 도자기 식판도 많이 쓰는 것 같은데, 아기는 식판을 종종 떨어뜨린다. 쓰더라도 후기용이라고 본다. 나는 안 써봤다.
흡착식판은 솔직히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먹일 때는 좋다. 그런데 설거지가 번거롭고, 어디 잠깐 놔뒀다가 떼려다 다 흘리고 난리가 난다. 나는 불편했다.
이건 하나 사서 써보고 결정하면 된다. 케바케 장비다.
숟가락은 그냥 알아서 사면 된다. 자기주도를 해도 숟가락은 몇 개 있는 게 좋다. 밖에서는 자기주도가 애매해서 나도 주로 스푼으로 먹였다.
다만 작은 이유식 스푼을 많이 사지는 마라. 얼마 안 가 스텐으로 된 범용 유아 스푼으로 다 바꾸게 된다.
자기주도를 일찍 시작하면 돌 무렵 스스로 스푼을 들고 먹기 시작한다. 첫째가 그랬다. 그때 필요한 건 예쁜 스푼이 아니라 던져도 되는 스푼이다.
팬과 냄비, 그리고 코팅팬 질문
스텐 팬과 스텐 냄비는 하나씩 구비하라. 괜찮은 스텐 팬은 4~5만 원이면 사고, 냄비는 너무 큰 것 말고 2~3만 원이면 산다.
스텐 팬은 난이도가 좀 있다. 예열과 기름 양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대신 열전도가 좋아서 볶음이 더 맛있게 되고, 2편에서 말한 디글레이징은 스텐 팬 바닥에서만 제대로 나온다.
코팅팬 쓰면 안 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써도 된다. 아니, 하나는 있어야 한다. 나도 테팔 프랑스 생산 티타늄 코팅 제품을 하나 두고 쓴다.
조건이 있다. PFOA 프리 코팅에, 잘 안 벗겨지는 걸로 사라. 그리고 과열만 안 하면 된다. 중불에 짧게 조리하는 용도라면 코팅팬도 안전하다.
테팔 가운데 열센서 동그라미가 있는 이유가 그거다. 과열하지 말라고 붙여놓은 거다. 빨간색으로 바뀌면 바로 재료를 넣고 시작하면 된다.
뒤집개는 실리콘이나 나무로. 코팅이 벗겨지는 건 대부분 뒤집개 때문이다. 그리고 코팅 상태를 보고 2~4년 주기로 교체한다.
용도는 스텐과 다르다. 계란 하나 볶을 때, 재료 간단히 볶을 때, 바빠서 후딱 해야 할 때는 코팅팬이다. 시간 있고 맛을 내고 싶을 때는 스텐이다.
식품건조기, 마스터기 살 돈으로 이걸
둘째 이유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산 물건이 식품건조기다. 사고 나서 첫째 때 왜 없었나 싶었던 쪽이다.
부피가 꽤 있다. 그런데 마스터기 살 바엔 이걸 사라고 하고 싶다.
이유는 간식이다. 이 시기 시판 간식은 거의 떡뻥 아니면 과일 퓨레다. 건조기가 있으면 비프칩, 간칩, 바나나칩처럼 화물칸에 도움이 되는 간식을 직접 만들 수 있다. 2편 간식 선반 얘기의 실체가 이 기계다.
범용성도 좋다. 나는 집에서 육포도 만들어 먹는 사람이라 이유식이 끝나도 계속 돌아간다. 히치하이커의 수건 기준으로 합격이다.
나는 20만 원짜리를 샀다. 싼 걸 사면 고르게 안 마르고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온다. 에어프라이어로도 흉내는 내지만, 저온으로 오래 균일하게 말리는 기능은 건조기에만 있다.
칼과 도마, 아기용을 따로 사야 하나
이유식을 시작하면 칼부터 도마까지 전부 따로 사야 한다고들 한다. 나는 글쎄다.
해보니 도마만 재료별로 구분하면 됐다. 고기, 생선, 채소. 그 이상 분리해야 하나 싶다.
교차오염 얘기를 하는데, 나는 그 우려보다 마케팅 요소가 더 크다고 본다. 위생에 조금만 신경 쓰면 어른 것과 같이 써도 문제없다고 본다.
이유식이 어렵고 힘든 이유 중 하나가 이거다. 장비를 다 따로 쓰다 보니 설거지가 두 배, 어떨 땐 세 배가 된다. 그 노동이 부모를 지치게 하고, 지친 부모는 화물칸을 볼 여력이 없다.
다만 칼은 좋은 걸로
세라믹 칼 써본 사람은 안다. 속 터진다. 첫째 때 산 것 중 가장 먼저 퇴출된 물건이다.
칼은 재료 손질부터 다지기까지 영혼의 파트너다. 이유식 내내, 유아식 내내, 그 뒤로도 매일 잡는다.
10만 원 정도만 써도 일반인 수준에서 반평생 쓸 칼이 나온다. 쵸퍼 살 돈으로 칼을 사라는 말이 여기서 다시 나온다.
도마도 마찬가지다. 도마가 별로면 위생도 별로고 칼날도 상한다. 좋은 칼에 좋은 도마, 이 둘이 이유식 장비창고의 수건이다.
도구를 풀세트로 산 집들의 결말
주변에서 많이 봤다. 이유식 시작 전에 마스터기, 쵸퍼, 큐브 세트, 아기용 칼과 도마, 식판 세트까지 풀세트로 사놓고, 몇 달 뒤 시판으로 100% 돌린 집들.
비난할 생각은 없다. 이유식과 유아식을 직접 만드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고, 나도 바쁠 땐 시판을 산다.
내가 안타까운 건 순서다. 돈과 시간과 에너지가 먼저 장비에 들어갔고, 정작 화물칸에는 뭘 실을지 정하기 전에 지쳐버렸다.
계산을 하나 해보자. 2편에서 적었듯 초지 방목 다짐육은 집 앞 마트에서 200g에 만 원 선이다. 20만 원짜리 이유식 마스터기 한 대 값이면 그 다짐육이 4kg이다.
몇 달 쓰고 창고로 갈 기계 하나와, 아기 화물칸에 매일 실리는 헴철 몇 킬로그램. 어느 쪽이 아기 몸에 남는지는 계산할 필요도 없다.
1편의 그 문장. 중요한 건 우주선 기종이 아니라 화물이다.
그래서 뭘 사야 하나, 최소 세트
여기까지 읽고 “그래서 뭘 사라는 거냐”가 남았을 것이다. 내 기준으로 정리한다. 진짜 없으면 안 되는 것만.
| 구분 | 품목 |
|---|---|
| 꼭 산다 | 좋은 칼(10만 원 선), 도마(재료별 구분), 이유식 의자, 큐브틀(용량은 해보고 결정), 유리·실리콘 소분 용기, 스텐 팬(4~5만 원)과 스텐 냄비(2~3만 원) 각 하나, PFOA 프리 코팅팬 하나, 스텐 식판, PP 턱받이, 스푼 몇 개, 연마제 제거제 |
| 써보고 결정 | 흡착식판, 쵸퍼, 저울(초반 레시피 잡을 때만) |
| 있는 걸 쓴다 | 믹서(범용 대용량), 오븐 또는 에어프라이어, 어른 칼과 도마 |
| 마스터기 대신 | 식품건조기. 간식 선반을 떡뻥에서 되찾아 온다 |
| 안 산다 | 아기용 소형 믹서, 이유식 전용 칼·도마 세트, 큐브틀 풀세트 |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할 한 가지를 꼽으라면 칼이다. 매일 잡는 물건이고, 이유식이 끝나도 잡는다.
추천 장비와 내가 실제로 재료를 사는 곳은 별도 페이지로 만들어 걸어두겠다. 이 글에는 브랜드를 늘어놓지 않는다. 기준을 가져가면 브랜드는 알아서 골라진다.
자주 받는 질문
Q. 마스터기 이미 샀는데 어떡하나.
쓰면 된다. 초반 몇 주 찜기와 믹서로 충분히 값을 한다. 다만 볶음으로 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손이 안 갈 텐데, 그때 억지로 쓰지 말라는 얘기다.
Q. 저울은 필요 없나.
처음 레시피를 잡을 때는 쓴다. 감이 오면 숟가락이 저울이다. 2편에 썼듯 양은 아기가 정하고, 성적표는 끼니가 아니라 일주일 평균이다. 그램 단위로 잴수록 부모만 불안해진다.
Q. 큐브 용량은 몇 g으로 시작하나.
우리 집은 30g부터였다. 다만 처음부터 여러 용량을 사지 말고, 며칠분을 한 번에 만들지 정해진 뒤에 사라.
Q. 코팅팬 유해하지 않나.
PFOA 프리 코팅에 과열만 안 하면 안전하다고 본다. 중불, 짧은 조리, 실리콘이나 나무 뒤집개, 코팅 상태 보고 2~4년 교체. 이 네 가지가 조건이다.
Q. 식판 연마제는 어떻게 닦나.
연마제 제거제로 검은 게 안 묻어날 때까지 닦고, 세제로 씻고, 한 번 끓여 쓴다. 스텐 냄비와 팬도 같은 절차다.
DON’T PANIC, 번외편
이유식 도구 시장은 부모의 불안을 먹고 자란다. 이걸 안 사면 뭔가 놓치는 것 같고, 저걸 안 사면 아기한테 미안한 것 같다.
당황하지 마라. 필요한 건 좋은 칼 하나, 도마 하나, 팬 둘, 의자 하나, 턱받이 하나, 얼릴 통 몇 개다. 나머지는 해보고 사도 늦지 않다.
히치하이커는 수건 한 장으로 은하계를 건넌다. 우주선은 얻어 타면 된다.
이유식이라는 은하수도 같다. 장비창고 문은 이쯤에서 닫고, 남은 돈과 시간과 에너지는 전부 화물칸으로 가져가라. 아기 몸에 남는 건 도구가 아니라 거기 실린 것들이다.
1편 「이유식이라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모험가들을 위한 안내서 1편 : DON’T PANIC」, 2편 「화물칸 적재 매뉴얼」을 아직 안 읽었다면 거기서부터. 우리 집이 실제로 항해한 기록은 「고기와 지방 이유식」 시리즈 1편부터 8편까지.
추천 장비창고와 재료 구매처 페이지는 준비되는 대로 이 자리에 링크를 건다.
참고 자료
- Douglas Adams.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1979. (수건에 관한 안내서의 정의)
- Coulthard H, Harris G, Emmett P. Delayed introduction of lumpy foods to children during the complementary feeding period affects child’s food acceptance and feeding at 7 years of age. Matern Child Nutr. 2009.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6860515 - WHO. Guideline for complementary feeding of infants and young children 6-23 months of age. 2023.
https://www.who.int/publications/i/item/9789240081864
마지막 수정: 2026년 9월 14일
마지막 수정:






